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안문 6.4 항쟁 (문단 편집) == 결과 == 천안문 6.4 항쟁 일주일 뒤, 시위를 주도한 자들에게는 당초 약속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을 뒤집고 대거 '''수배령'''이 떨어졌다. 특히 다수의 학생 시위대를 겨냥한 21명의 블랙리스트가 중국 언론 매체에 퍼졌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 시기에 잡혀들어가 중형을 언도받거나 국외로 추방되었고, 혹은 외부 세력의 도움을 받아서 국외로 망명했다. 이들을 돕기 위한 망명 작전이 바로 '[[카나리아]] 작전'이다. 카나리아 작전은 서방 국가나 [[홍콩]], [[싱가포르]], [[대만]] 시민들과 민주화에 찬성하는 일부 중국 시민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많은 수의 해외 인권운동가, 저널리스트, 중국 학자들과 뜻있는 시민들이 이 시기 반체제 지식인들을 위해 비자를 발급해주고 비행기나 배 등의 수단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왔다. 후술할 시위의 구심점 3인방인 [[왕단#s-3]]과 [[우얼카이시 둬라이티]], [[차이링]] 또는 시위의 상징이 된 [[탱크맨]] 등이 이 작전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